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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변호사]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8.19 09:37 조회수 : 3881

 

어떻게 죽을 것인가.

 

법무법인 세승

박재홍 변호사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환자는 당뇨병, 고혈압, 뇌혈관질환 등 기왕력이 있는 80대 남성으로, 갑자기 의식이 저하되어 119구급차로 응급 후송된 자였다. MRI검사에서는 양측 내경동맥 완전 폐색에 의한 뇌경색의 소견이 완연했다. 뇌경색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정맥내 혈전용해술이 필요했지만, 이를 시행할 경우 환자에게 출혈로 인한 후유증이 높았다.

 

의사는 보호자에게 위와 같은 사정을 설명했다. 여기에 환자는 광범위한 뇌손상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일주일 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고 설령 사망하지 않더라도 식물인간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소견을 덧붙였다. 그러자 환자의 보호자는 치료비가 부담이 되기 때문에, 정맥내 혈전용해술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나아가 뇌부종 조절을 위한 약물의 투여, 인공호흡기의 적용 등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명치료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러한 경우 의사는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여도 될까.

 

정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대법원은 일찍이 뇌수술 후 뇌부종으로 자가호흡을 할 수 없어서 인공호흡기가 부착된 환자에 대하여 보호자가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퇴원을 요구하자 이를 받아들여 의사가 환자를 집으로 호송한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사건에 있어서, 해당 환자에 대한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한 보호자를 살인죄 정범으로, 위 인공호흡기 제거를 결정한 의사가 살인죄 방조범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경우 사망할 수 있는 환자에 대하여, 의사가 보호자의 요구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였다가, 그 환자가 실제 사망한 경우, 그 의사는 살인죄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위 사례의 경우에도 인공호흡기 제거 등을 할 경우 환자가 사망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의사는 보호자의 요청이 있더라도 당장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다. 대법원은 김할머니 사건에서 환자가 의학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하고, 환자 본인의 치료중단 의사가 명확하게 입증된 경우, 의사에 의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의학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한 경우‘, 즉 연명치료 중단의 대상이 되는 회복불가능한 치료의 단계(terminal case)‘의 구체적인 범위에 관해서는 상당한 이견이 있다.

 

또한 현재 국내에서 환자가 사전의료의향서(AD) 또는 연명의료계획서(POLST)를 미리 작성해두는 경우란 거의 없다. 따라서 의식이 없는 말기환자라면, 보호자가 환자 본인의 치료중단 의사를 명확하게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최초 언급한 사례로 돌아가 보자. 환자는 중증 뇌손상으로 인하여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예상되는 경우였다. 다만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의 의사를 명백하게 입증할만한 증거는 없었기 때문에, 설사 보호자의 요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사로서는 섣불리 인공호흡기 제거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과연 이러한 상황이 타당한가. 법원은 예외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환자의 명시적 의사가 없더라도 이를 추정해 볼 수 있지만, 이러한 환자의 추정적 의사는 어디까지나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만 인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한 환자의 연명치료에 대한 판단을 받기 위하여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의 기간을 요구하는 법원의 소송절차를 거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에 관해서는 상당한 의문이 든다.

 

나아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하여 진지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아동이나 지적장애인이 말기환자에 해당하는 경우, 사실상 환자 본인의 의사를 추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문제도 있다.

 

어찌보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 자체를 회피해온 것 같다. 그리고 이를 의사가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나, 혹은 살인죄 성립 여부와 같이 법원이 판단해야 할 법적 문제로만 치부해온 것이다.

 

그러나 말기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은 결코 간과될 수 없는 현실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환자 본인만이 아니라 환자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최선의 이익을 고려하여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법원에서 모두 해결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20156월에 존엄사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것은 긍정적이다. 현재 발의된 존엄사법안은 사전의료지시서를 등록하는 방법, 의료지시서를 등록한 환자 또는 의료지시서를 등록하지 않았지만 보호자의 요청으로 기관윤리위원회의 조사 및 심의를 거쳐 그 의사가 추정되는 환자에 대하여 의사가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점, 이러한 경우 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으로 인한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 등과 같이 적법한 연명치료 중단을 위하여 필요한 기본적인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앞으로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에 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임상현장의 의사, 환자 및 가족과 함께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고민을 공유하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금번 존엄사법안 발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보다 더 진지하고 합리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

 

(출처 : M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