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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섭 변호사] 신해철법 한 번 더 생각하기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6.03.08 16:57 조회수 : 3987

신해철법 한 번 더 생각하기

 

신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세승)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중에는 의료사고로 환자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칠 경우 의사나 병원의 동의가 없어도 분쟁조정을 진행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자동개시조항이 담겨져 있다.

 

환자단체 등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이른바 예강이법또는 신해철법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개정안 마련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20141월경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인 전예강 양이 빈혈증세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내원하였으나, 뇌수막염 의심 하에 요추천자검사 도중에 병원도착 7시간 만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전예강 양의 유족은 환자단체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하였으나, 대학병원의 거부로 조정신청이 각하되어 조정절차는 전혀 진행되지 못하였다. 이에 유족은 자동개시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개정안 마련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먼저 의료분쟁 조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이번 자동개시조항의 도입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자동개시조항 도입에 따른 법적·정책적 측면에서의 몇 가지 쟁점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먼저 첫째, 자동개시조항은 상호 신뢰와 이해, 자발적 의사라는 조정제도의 취지에 반한다. 참고로 민사조정법은 피신청인의 출석을 강제하지 않고 있다. 둘째, 소송 이전에 조정에 응하도록 하는 것은 당사자의 소송권을 침해하고, 조정의사 없는 자에게 조정을 강제하는 것은 조정을 거부할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 셋째, 이미 자동개시를 마련한 다른 제도와의 형평성 측면에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나, 좀 더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국소비자원은 사업자의 책무 즉 국민경제와 관련된 분야의 특성상 집단분쟁조정까지 마련하였다는 점,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역시 환경 보전을 위한 분야의 특성상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경우 직권조정까지 마련하였다는 점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각 분야별 분쟁조정제도의 취지, 목적, 특성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특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형평성이라는 잣대로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 할 것이다. 넷째, 조정개시율을 높이기 위해서 자동개시조항이 필요하다고 하나, 조정개시율은 1238.6%, 1339.7%, 1445.7%로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강제개시제도를 도입할 경우 개시율은 상승할 수 있겠으나, 의사에 반한 조정참여로 조정성립률(승복률)’은 하락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끝으로 다섯째, 중상해에 대한 개념 정립 역시 형법상 기준을 고려하면 된다고 주장하나, 형법은 신체의 건강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국가의 형벌권 행사 영역임에 반하여 분쟁조정 같은 민사는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는 영역으로써 단순히 형법상 기준을 차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며, 이에 대한 의학적·법적 논의가 심도 있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번 신해철법 논의를 포함한 그 동안의 의료관련 법·제도의 논의과정 전반을 살펴보면, 이미 의료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규제 중심의 논의가 진행되어 균형감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아직도 절대 다수의 의료인들은 전문가로서 의료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보다 발전적인 논의를 기대해본다.

 

<출처 : 데일리메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