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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변호사] 의사와 엉겁결에 합의했는데...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1.29 13:12 조회수 : 4248
 

의사와 엉겁결에 합의했는데...


대외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선욱


Q: A씨는 부인인 B씨가 병원 진료 도중 상태가 생각과는 달리 악화되자 고민에 빠졌다.  사실 A씨는 부인 B씨의 입원치료비가 수천만원에 달한다는 병원 직원 이야기를 듣고 병원비 마련에 고민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또한 부인의 병세 악화에 병원 측의 책임이 다소 의심되었으나, A씨로서는 정확히 어떤 과실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여 난감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러한 정황을 눈치 챈 병원 측에서 먼저 그 동안 입원 치료비를 면제하여 주고 위로금으로 천만원정도를 준다고 해서 A씨는 향후 일체의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병원측과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그런데 아내 B씨의 상태가 호전되지도 않고 더 나빠지게 되고 보니 합의금이 너무 작다고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과 합의서에 도장까지 찍어 준 뒤에 병원에 대해 손해를 더 내놓으라고 청구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A씨는 병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을까?


A: 최근 부산지방법원에서는 비록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가 향후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의도로 의료기관과 합의했더라도 그 금액이 손해배상금에 비해 턱없이 적다면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했다. 의료기관과 환자와의 합의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경솔히 합의를 체결해 손해배상금보다 턱없이 적은 금액을 받았으므로 공정한 법률행위로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내용이었다. 합의서 작성과 관련된 합의계약도 분명히 계약으로서 효력이 있고 이를 체결한 당사자는 계약 내용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어떻게 합의서와 관련된 계약을 무효로 판단했을까? 일반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주체는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등한 지식이나 협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데 만일 계약 당사자 중 일방이 지적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거나 관련 계약 내용에 대한 지식이 적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민법에서는 인정하고 있다. 민법 제104조에서는 계약 당사자 일방이 경험이 없거나 곤궁한 상태에서 현저히 불리한 계약을 체결한 경우 계약의 효력이 없도록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위 재판에서도 재판부는 "운전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해온 유가족들은 당시 병원비를 내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이러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원비 감면과 1천만원의 합의금에 합의한 사실이 인정되며 당시 유가족의 상황을 볼 때 적절한 손해배상금에 대한 개념이 없어 성급히 손해배상금을 포기하고 합의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는 민법 104조에 의해 불공정한 법률행위로 봐야 한다"고 하여 합의 계약을 무효로 본 것이다.  위 사례로 돌아와서 살펴보면, A씨가 병원에 대해 합의서를 작성한 후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손해를 주장하기 위하여는, ① 합의 전후 정황 상 A씨가 경제적으로 매우 곤궁한 상태였다는 점, ② A씨가 병원 측이 어떠한 중대한 잘못을 했는지를 잘 알지 못했다는 점, ③ 실제 손해액과 현실로 지급받은 위로금 간에 사회통념상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점, ④ 합의를 하게 된 계기가 병원측에서 주도적이었다는 점 등이 증명되거나 입증되어야 합의 내용을 부인하고 실제 손해액에 대하여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