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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변호사] 의료소송의 결론, 판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1.29 13:27 조회수 : 4111
 

의료소송의 결론, 판결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대외법률사무소 최재혁 변호사


어느 날 할아버지 한 분이 목이 부어 불편하다며 밤늦게 피고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에서는 이런 저런 검사를 하더니 조금 있다가 의사 한 명이 다가와 갑자기 입을 벌리면서 기관내삽관을 시도하였다. 할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의사의 행동에 당황해하며 기관내삽관을 거부하였으나 의사는 진정제를 투여한 후 기관내삽관을 강행하였고, 그나마 3차례나 실패하였고 결국은 기관절개술까지 시행하였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내 급성호흡부전 증상을 보였고, 의사는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으나 할아버지는 결국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 중환자실에서 몇 년째 치료를 받고 있다.


과연 응급실에서 기관삽관술과 기관절개술을 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기관삽관술을 시행하기로 결정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기관삽관술과 기관절개술을 하면서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의사로서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선택의 여지 없이 기관삽관술을 시행하였고, 환자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실패하였고, 결국은 기관절개술을 시행한 것이기 때문에 의사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일까?


진료기록부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을 찾았고, 당시에 할아버지의 목이 너무 부어 있는 상황이라 기관내삽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진료기록감정 결과에 의하면, 환자의 호흡곤란 상태에 비추어 본다면 기관내삽관을 몇 차례 실패하였고 기도확보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것 때문에 환자의 뇌손상에 대한 의료과실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회신이 도착하였다.


그러나 결국 해답은 진료기록부에서 찾아냈다. 피고병원 흉부외과 기록에서 기관절개술 도중에 기흉이 발생하였고 그 때문에 폐쇄성 흉강삽관배액술을 시행했다는 기록을 찾은 것이다. 기흉이란 늑막 손상으로 늑막강 안에 공기가 쌓여 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저산소증이 야기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기관삽관술 및 기관절개술의 계속된 실패로 산소공급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게 한 과실 및 기관절개술 시 긴장성 기흉을 야기하여 저산소성 뇌손상을 야기한 과실 등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발생하였다. 할아버지가 사고 이후 피고병원 중환자실에서 계속 치료를 받고 있었으므로 신체감정도 받을 수 없었고, 가족들 입장에서는 할아버지의 향후치료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피고병원에서 할아버지를 계속 치료해 주기를 원하지만 재판에서 판결로 종결할 경우에는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돈을 받고서는 병원을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판결 전에 조정절차 즉 합의가 시도되었고, 재판부의 조정하에 환자측과 병원측의 협력 협조 하에 조정이 이루어 졌다. 피고병원은 할아버지가 사망할 때까지 치료를 책임지고, 기왕의 치료비를 포기하며, 가족들에게 소정의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으로 합의에 이른 것이다.


의료소송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절차에 의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소송은 손해배상소송에 의하는 것이고, 손해배상소송은 손해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처럼 다양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의료소송에서는 합의나 조정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으며, 본 건의 경우에는 판결이 아닌 조정으로 결론이 나왔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적절한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