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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두륜 변호사] 항생제 처방에 대한 심사기준과 의료과실의 판단 기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1.29 14:21 조회수 : 4265
 

항생제 처방에 대한 심사기준과 의료과실의 판단 기준


대외법률사무소 현두륜 변호사


오래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항생제 처방 비율을 낮추기 위하여 항생제 처방에 대한 처방료를 삭감하고, 처방된 약제비를 처방한 의사로부터 환수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항생제 처방비율이 높은 의료기관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생제 처방비율이 여전히 높다고 하면서, 관리를 계속하고 있다.


주로 삭감되는 사례는 급성인두염(감기) 환자들에 대해서 항생제를 처방하는 경우이다. 심평원은, 감기는 대부분 바이러스성 질환으로서 이에 대해서는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고, 오히려 항생제 남용의 문제만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외국의 통계자료와 비교하면서, 우리나라의 항생제 처방비중이 지나치게 높고, 그에 따라 항생제 내성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일반인들에게 홍보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의사들은 항생제 처방의 필요성과 심평원의 항생제 처방기준은 의료현실에 부합되지 아니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조사의 방식과 그 전제사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통계자료와 우리나라의 자료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론하면서, 오히려 인후염이나 기관지염 등에 있어서 선진 외국의 항생제 처방율이 우리나라보다 더욱 높다는 연구결과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한편, 심평원의 항생제 처방 삭감에 대해서, 대부분의 의사들은 적극적으로 다투기 보다는 삭감에 순응하거나 이후에는 항생제 처방을 자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평원은 항생제 처방 비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 삭감처분의 정당성과 그 효과를 피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몇몇 의사들에게 문의해 본 결과, 심평원의 삭감처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쟁송절차의 복잡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판단일 뿐, 의학적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오히려, 부당한 삭감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만약, 심평원의 심사기준대로 필요한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의료사고라도 발생하면, 심평원이나 국가가 이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인지 반문하는 의사도 있었다. 


과연, 심평원의 항생제 투여 기준에 따라 감기환자에게 항생제를 투여하지 아니하여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의사의 손해배상책임은 면제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 판결이 있었다. 


이 사건은, 발열과 두통, 복통 등으로 의원에 3차례나 내원한 남자 아이에게 의사가 단순히 급성인두염과 위장염으로 진단하고 항생제를 처방하지 아니하였다가,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혼수상태에 빠져 상급의료기관으로 전원되었지만,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례이다.


위 사건에서, 원고는 3회에 걸친 진료와 투약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세균성 인두염으로 인한 뇌수막염 가능성에 의심을 두어 항생제를 투여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대해서 피고인 의사는, 원인균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험적으로 항생제를 투여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서, 서울고등법원은 의사의 과실을 인정하였다. 급성인두염 환자가 세균성 감염으로 인한 뇌수막염으로의 발전할 가능성을 고려하여, 의사는 예방적으로라도 항생제를 처방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뇌수막염은 감기증상과 비슷하여 발병 초기에 정확한 진단이 어려운 점,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폐해를 고려할 때 세균성 뇌수막염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까지 경험적으로 항생제를 투여한 것이 의학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 등의 사정을 감안하여, 의사의 책임비율을 45%로 제한하였다. 


판결문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의사는 심평원의 항생제 투여 기준과 만약 이러한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였다면 과잉처방으로 삭감을 당하였을 것이었다는 점을 호소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의사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법원은 의사에게 ‘최선’의 주의의무를 요구하고 있고, 이는 의료행위를 할 당시 의료기관 등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위 사건에 있어서 법원은, 세균성 감염으로 인한 뇌수막염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감기환자에 대해서도 경험적으로라도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이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또는 실천되어야 할) ‘최선’의 주의의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비하여, 심평원의 심사기준은 ‘일반적인’ 또는 ‘보통’의 주의의무를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이상 증상도 확인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감기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면 삭감을 한다.


의료과실의 판단에 관한 법원의 기준과 심평원의 심사기준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항생제 처방에 관한 부분만이 아니다. 그로 인하여 의사들은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현재의 상황에서 법원의 판단 기준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렇다면, 심평원의 심사기준이나 심사관행이 바뀌어야 한다. 항생제 처방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점은 대부분의 의사들이 공감하고 있으므로, 항생제 처방에 관한 합리적인 기준은 필요하다.


더욱 큰 문제는 심평원의 심사관행이다. 진료기록부에 기재되어 있는 진단명과 환자의 상태만을 가지고, 환자에 대한 항생제 투여의 적정성 여부를 형식적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생제 처방의 이유와 그 필요성에 대한 의사의 의견을 묻거나, 해당 환자들을 상대로 확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로지 진료기록부의 기재내용만을 근거로 기계적으로 심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사결과는 신뢰성이 떨어지고, 당연히 의사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의약분업의 시행으로 의사들이 불필요한 약을 처방할 이유는 없게 되었다. 또한, 항생제 남용의 문제점은 환자들 이전에 의사들이 항상 고민하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항생제를 처방하는 것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 심사를 함에 있어서 심평원이 항상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항생제 처방에 대한 삭감이 오히려 ‘과잉’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