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소개

기고문/칼럼

[김선욱 변호사] CT판결에 관하여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1.29 14:33 조회수 : 4169
 

CT판결에 관하여


2004. 12. 서울행정법원에서 CT 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였다. 이 판결로 인하여 대한민국 의료계는 한 바탕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양․한방이원주의 체제를 선택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제도적 문제점이 이 판결로 인하여 결국 폭발하게 되었다. 보라매 판결 이후 의료계에 가장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사건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보라매 사건이 그렇듯이 정작 의료계에서 CT 사건의 사실관계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사건의 배경이나 그 사실관계 그리고 법원의 판단 과정에 관하여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사실관계는 법원에서 판단한 내용을 주로 하기로 한다.


서울 강남에서 한방병원을 개설한 모 의료법인은 2002. 11. 1.경부터 한방병원에 특수의료장비인 전산화단층촬영장치(Computed Tomography)를 설치하고, 위 병원의 한의사인 K에게 CT 기기를 사용하여 방사선진단행위를 하게 하였고, 한의사 K는 방사선사로 고용된 P로 하여금 1일 평균 3~4회에 걸쳐 CT 촬영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서울 모구의 보건소장은 모 의료법인이 의료인(한의사 K)에게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게 하여 의료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2004. 4. 6. 위 의료법인에 대하여 의료업 업무정지 3개월 처분을 하였다. 의료법인은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의료법인 측의 주장은 한의사도 CT를 이용하여 진단행위를 할 수 있으며, 한의사도 방사선사를 고용하여 CT를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행정법원은 원고인 의료법인과 피고인 보건소장 그리고 피고의 승소를 위하여 소송에 참여하였던 영상의학회(보조참가인)가 제출한 자료 등을 참고하여 모 보건소장의 이 사건 업무정지 3개월 처분이 위법하다고 하여 원고의 승소판결을 하였다. 서울 행정법원의 판결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한의사의 방사선 진단행위가 한의사 면허 외의 행위인지 여부에 관하여는 의료법 및 의료와 관련된 다른 관계법령에 한의사에 대하여 CT 기기의 사용이나 이를 통한 진단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CT 기기 사용이 한의사의 면허 외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하였다.


다음으로 ② 한의사의 방사선 진단행위가 한의학상 인정되는 의료행위인지에 대하여는, 환자의 용태를 관찰하는 진찰의 방법 또는 수단은 의학이나 한의학 모두 인간의 오감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양방과 한방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한의사가 환자의 용태를 보다 정확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그 CT를 사용하는 것은 망진의 수단 또는 방법에 해당한다 할 것이며, 한의과 대학에서도 CT 기기와 같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기 위하여 현재 해부학, 진단방사선학 등 영상 진단에 필요한 여러 과목을 개설하여 교육하고 있는 사실이 있으므로 한의학에서도 CT 기기를 사용한 진찰을 학문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보았다.


③ 한편, 의료기사등에관한법률상 한의사가 방사선사를 고용할 수 없는 것만을 가지고 위 K한의사가 P방사선사에게 CT 기기를 사용하도록 지시한 것이 이 사건 처분의 원인이 된 무면허의료행위를 시킨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입법론적으로는 한의사도 방사선사를 고용할 수 있도록 의료기사등에관한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문 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사정으로는 위 의료법인이 CT 기기를 비만치료에도 활용을 하였다는 점과, 피고인 모 구청은 의료법인이 CT 기기를 도입하여 설치할 때 그 신고를 수리하였다는 점이다. 행정법원이 피고 행정청이 CT설치 신고를 받아 주었음에도 후에 CT 기기를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한다는 상호 모순적인 상황을 이유로 의료법인의 행정소송 청구가 승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일반적이었는데, 판결문에서는 이러한 언급이 없이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판결을 하게 되었다.


의료일원화가 되지 아니한 현 의료법 체계에 있어서 위 행정법원의 판결은 일반적인 사회통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좀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식이 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의사와 의사가 엄연히 구별되어 있는 현재 의료법체계하에서 서양 의료기기인 CT를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결론은 의사의 관점은 물론이거니와 국민일반의 법감정에서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전통적으로 사법부는 소극적인 권력기관으로 파악되어왔고, 사법부 자체의 독립성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법적극주의를 지양해왔다고 본다. 즉, 사법부는 소송이 제기된 개별 사건에 대하여 법 해석을 하는 기능으로 스스로 그 권한을 자제하여 왔던 것이다. 사법부의 본래 기능을 넘어서 법을 해석에 의하여 창조하거나 판결로써 제도의 체계를 흔드는 일은 매우 신중하였다. 그런데 CT 사건의 경우에는 행정법원이 사법적극주의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의사도 첨단 의료기기인 CT 기기를 활용하여 진료를 한다면 국민에게 더 낳은 보건의료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원심법원의 생각은 결국에는 한방과 양방이 서로 의료일원화로 가야한다는 측면에서의 입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양․한방에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고, 양방에서는 일원화를 들고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의계 쪽에서는 일원화 논의에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현재 항소심에서 CT 사건이 진행 중이고 원고와 피고 모두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항소심법원은 CT 사건이 의료계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매우 지대하며 향후 CT 기기의 사용권한 뿐 아니라 내시경이나 초음파 등 진단에 관련된 모든 의료기기의 사용권한 문제는 물론 더 나아가 양․한방 일원론에 있어 당해 판결이 개별 사건에 대한 판결문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점에 대한 거시적인 측면의 이해를 바탕으로 보다 신중한 판결을 내리기를 기대하여 본다.


 변호사 김 선 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