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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변호사] 마판증후군과 대동맥박리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1.29 14:59 조회수 : 4126
 

마판증후군과 대동맥박리


최재혁 변호사


십여년 전 국가대표 농구팀 주전 센터 한기범을 기억하는지 궁금하다. 농구팬 여부를 떠나 2m5㎝ 최장신 센터 한기범을 코트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농구표 값이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한기범 선구가 마판증후군이었고, 현역 은퇴 후 마판증후군으로 쓰러져 10시간을 넘는 힘겨운 수술 끝에 가까스로 건강을 되찾았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본 필자가 이번에는 마판증후군과 관련된 판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마판길(가명)은 대학생으로서 어느 날 저녁 6시에 친구들과 농구를 하다가 팔꿈치로 상복부를 맞은 후 흉부통증과 호흡곤란으로 구급차에 실려 인근병원에 들렀으나 이내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진은 흉부방사선촬영, 혈액검사 후 ‘흉복부좌상’으로 추정진단을 한 후 진통제를 투약하고 수액을 보충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계속 관찰하고 있던 중, 다음 날 새벽 3시 마판길은 퇴원을 요청하였고, 의료진은 아침 9시에 항생제와 위장약을 처방하면서 환자를 퇴원시켰다.

그러나 마판길은 퇴원 후에도 통증이 계속되다가 같은 날 저녁 6시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로 후송되었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부검 결과 마판길은 대동맥박리에 의한 심장압전으로 밝혀졌다.


마판증후군은 근골격계 이상, 심혈관계 이상 등이 나타날 수 있는 결체조직 질환으로, 마판증후군 자체가 대동맥박리의 중요한 위험인자이고, 근골격계 이상으로는 거미손, 큰키, 척추만곡증, 새가슴, 인대의 과잉연축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혈관계 이상으로는 승모판막탈출증, 대동맥판막폐쇄부전증, 대동맥박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이에 유족들은 대학병원을 상대로, 마판길은 큰키(192㎝), 거미손, 새가슴 등 마판증후군의 신체적 특징을 지녀 대동맥박리의 위험이 높은 상태였고, 대학병원 내원 당시 호소한 증상에 비추어 대동맥박리를 진단할 수 있었음에도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한 과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학병원으로서는, 마판길이 마판증후군에서 보일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을 지녔고, 심한 흉부통증을 호소하였으며, 결국 대동맥박리로 사망하기는 하였으나, 흉부방사선촬영에서는 별다른 이상 소견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동맥박리의 확진을 위하여 정밀검사를 권유하였으나 마판길이 거부하고 퇴원한 이상 병원의 과실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즉, 마판길은 대동맥박리의 중요한 위험인자인 마판증후군의 신체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고, 심장 부근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으므로 의료진으로서는 환자에게 대동맥박리를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고 전제한 후, 대동맥박리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신속히 검사를 하여 이를 진단하여야 하나 대학병원 의료진은 심장초음파검사나 전산화단층촬영(CT) 등 대동맥박리의 진단에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지 아니하여 대동맥박리를 발견하지 못한 과실을 인정하였다.


또한 법원은 의료진은 정밀검사를 권유하였으나 환자가 거절하고 퇴원한 이상 책임이 없다는 대학병원의 주장에 대해서는, 만일 의료진이 대동맥박리를 의심하였다면 질환의 신속한 진단 및 그에 따른 응급수술의 필요성에 비추어 볼 때 환자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대동맥박리의 진단에 필요한 정밀검사를 시행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를 배척하였다.


한기범 선수는 다행히 건강을 되찾았다고 하나, 장신 운동선수 중에는 마판증후군으로 목숨을 잃은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 그것도 대동맥과 심장에 이상이 발생해서 말이다. 키 크고 팔·다리 긴 사람이라면 대동맥과 심장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를 한번 받아 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