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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변호사] 외국인 환자와의 의료분쟁 해결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1.29 18:27 조회수 : 4151
 

외국인 환자와의 의료분쟁 해결


김선욱 변호사


미국인인 shelly양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체류 중에 A성형외과에서 가슴확대수술을 하였는데 가슴이 딱딱해지는 구축현상이 나타났다. shelly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A성형외과 재차 수술을 하였지만 수술도중 오히려 기흉이 발생하여 대학병원으로 응급이송까지 하면서 고생을 하였다. shelly양은 A성형외과 원장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shelly양은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 전에 계약서에 만일 문제가 생기면 중재인을 통하여 중재를 한다는 문구에 서명을 하였다. 이에 따라 shelly양과 A병원장은 서로 협의하여 중재인을 선임하였고 중재인의 판단에 따라 중재 판정을 받게 되었다. A병원장은 B보험회사에 의료사고 배상 보험에 가입하였는데, A병원장은 shelly건으로 B 보험회사에 보험금 청구를 하였다. B보험회사는 법원의 판결이 아닌 중재판정에 대하여는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한다. A병원장은 어떠한 조치가 가능한가? 


최근 외국인환자가 국내 의료기관을 찾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정부나 의료계도 여러 각도에서 외국인 환자 유치에 입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는 특성상 치료를 목적으로 단기체류를 하기 때문에 만일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이에 대한 해결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의료사고에 따른 배상 문제를 걱정하여 우리나라에서 진료를 받는 것을 꺼려할 소지가 있다. 의료사고는 통상 법원을 통하면 2-3년이라는 장기간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해결방안으로 정부는 법원의 판결보다 신속한 중재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병원이 배상을 해 주어야 하는 경우 배상금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병원에 의무적으로 의료사고배상보험에 가입하는 시스템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 외국인 환자가 우리나라에서 안심하고 진료를 받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논의되는 두 가지 축이 바로 중재와 배상보험인 것이다. 그런데 보험회사들 입장에서는 중재제도가 오히려 외국인 환자들에게 합의금이나 배상금을 더 많이 주는 신뢰하지 못할 제도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도 같다. 중재와 보험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어떻게 운용되어야 할까?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의료기관은 모두 의료사고 배상보험에 가입하여야 하고 이 경우 의료분쟁을 중재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을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다. 보험가입이 강제되어 있고 중재도 강제되어 있는 경우에는 헌법상 개인 또는 법인 의료기관의 직업수행의 자유나 재판청구권 등을 제한하는 정도가 크기 때문에 헌법상 기본권제한 법률유보의 원칙에 따라 입법에 의하여 이러한 제도가 준비되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가입강제의 경우에는 일정정도 공익적 필요에 따른 합리적 입법정책적 판단으로 양해될 소지가 있다(예: 자동차사고 책임보험). 그러나 중재강제는 이해관계인인 외국인 환자의 재판청구권 또한 심하게 제한됨에 따라 입법이 된다고 해도 위헌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중재강제제도는 헌법상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강제 중재의 경우(진료계약서에 획일적으로 중재를 하도록 정형화 된 경우) 공정거래에도 반하므로 공정거래 관련 법령에도 위반될 소지도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외국인 환자와 의료기관간의 자체적 협의에 따라 중재를 분쟁해결 방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중재제도가 운용된다면, 이는 헌법상으로나 공정거래법 등에 저촉될 소지는 없다고 판단된다(다만, 의료기관이 사실상 약관의 형태로 진료계약서를 준비해두고 외국인 환자에게 사실상 중재를 강제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약관규제법에 저촉될 소지는 있다).


한편, 앞서 본 사례에서 보험회사가 외국인 환자 중재 판정에 대하여는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에 대하여 살펴보면, 중재제도도 대한민국 법률에 의하여 제정된 중재법에 따른 법적인 분쟁해결 방식으로 법원에 의한 분쟁해결 방식과 형식이나 제도상 차별을 받을 합리적 이유가 없다(상사중재에 관한 대한상사중재원 참고)고 판단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사고 분쟁의 경우를 보더라도, 의료사고 배상 보험에 가입된 의료기관은 대부분 보험회사에서 선임된 소송대리인이 환자측의 대리인과 대항하여 의료사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음에 따라 중재의 경우에도 보험회사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험회사에서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여 진행하면 법원을 통한 소송과 중재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일부 교통사고 중재의 경우 중재원에 보험회사 측에서 일부 비용을 분담하는 등으로 조직구성에 관여하여 어느 일방에만 치우친 결론이 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보험회사는 중재원(중재센터)의 중재판정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미리 체결하여 중재제도를 인정하는 입장이다. 일본의 경우 중재센터에 접수된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최종 중재판정이 되는 비율은 5%미만이고 대부분은 당사자간 합의로 종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보험회사가 법원의 판결과 중재판정을 달리 보아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된다. 중재도 엄연히 중재법상 인정된 제도이다. 중재법 제35조에서는 “(중재판정의 효력) 중재판정은 당사자간에 있어서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의료사고 배상 보험에 가입한 의료기관과 외국인 환자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고 그 분쟁에 당사자들이 중재계약을 하여 의료사고 분쟁을 중재를 통하여 해결한다면, 중재판정이 나온 결과에 관하여 보험회사가 중재판정의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하여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때 실제 현장에서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 예상된다. 이 경우에는, 보험가입자인 병원장은 금융감독원에 있는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위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서 분쟁 조정이 되지 아니하는 경우 결국에는 의료기관이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금 지급 청구의 소를 제기할 것이고 법원은 이에 따라 중재판정의 타당성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법원은 중재판정이 국내 판례 등을 기초로 하여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진행(중재절차나 중재판정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지 여부 등-중재법 제36조 참조)되었는지를 판단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은 법원을 통한 분쟁의 해결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분쟁을 공기관인 법원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선택한 간이한 분쟁해결제도(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에 따라 해결함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분쟁의 신속한 해결이나 과다한 변호사 보수를 염두에 두어 놓고 중재와 같은 ADR제도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인 환자가 점차 증가되는 현상은 단지 의료기관 또는 의료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분쟁해결을 위한 사법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우물안 개구리 마냥 우리의 관례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의료사고의 해결에 있어서도 글로벌 스탠다드가 있을 수 있고, 의료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야겠지만, 만일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든 외국 환자든 간에 모두 합리적으로 그 판정이가 중재결정에 대하여 수긍할 수 있는 국제적 손해배상 기준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법원이 의료사고에 대하여 판단하는 기준은 이미 국제적이 되어 있다고 본다. 의학적 판단이 서양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고 이러한 의술의 선진화 때문에 해외 환자들이 한국을 찾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위자료에 관한 문제이다. 최근 위자료액 상한이 어느 정도 올라가게 되었지만, 아직도 사망사고에 대하여 위자료액이 5-6천만원으로 법원의 관행상 한정되어 있다. 이 금액은 1980년대와 별 다를 바가 없다. 1980년대의 5천만원이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지만 현재는 위 돈으로는 전세를 얻을 수도 없는 물가 상승이 있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위자료 상한에 대하여 매우 인색하다. 외국인 환자가 소송이나 중재를 하는 경우 제일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바로 위자료 액수일 것이 뻔하다. 물론 국민건강보험수가의 저수가 정책으로 의료기관에게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 배상액을 고액으로 책정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러나 보험수가가 적용되지 아니하는 외국인 환자의 경우에는 수가 탓을 하면서 위자료에 한정을 두는 것은 결국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소지가 있다고 본다. 외국인 환자와 관련된 의료사고 배상보험제도를 창안하거나 고안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위자료 부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할 것이다. 정책당국에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를 감안하여 외국인이 안심하고 우리나라에 와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이해관계자인 의료기관과 보험회사 등과 정책을 세우기 전에 충분한 협의를 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