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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두륜 변호사]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그 한계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01.29 18:48 조회수 : 3955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그 한계


현두륜 변호사


 2008. 5.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70대 환자 본인과 그 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치료행위의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환자는 폐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병원에서 기관지내시경을 이용한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던 중 저산소증에 의한 뇌손상을 입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소위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항생제 투여, 인공영양 공급, 수액 공급 등의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 본인의 특별대리인 및 환자 가족의 자격으로 병원에 대해서 치료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온 것이다.


 위 사건은 소위 말하는 안락사 논쟁과 관련되어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이 사건에 관하여 법원은 청구인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08카합822사건). 이 사건에서는 여러 가지 쟁점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바로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가 그 한계에 관한 부분이다. 그에 관한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1)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할 것이므로, 환자가 의료행위의 계속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더 이상 그 의료행위를 계속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는 결국 생명에 대한 포기나 처분권을 인정하는 것과 같아질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경우에까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무제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절대적 생명보호의 원칙을 고려할 때 허용될 수 없다. 특히, 현행 법률에 의하여 그와 같은 치료 중단의 허용 여부나 그 요건, 방법 등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 및 자살방조를 처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서는 응급의료 종사자에게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라는 의무를 부과함과 동시에 정당한 이유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중단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는 아직 뇌사상태에 이르지 아니한 환자의 경우에는 가족이 동의한 경우에도 장기를 적출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환자 본인이라고 하더라도 그 생명을 단축시키게 되는 치료 중단을 요구할 수는 없다.


 2) 이 사건에서 환자가 현재 식물인간 상태이기는 하지만, 의료기술의 진보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라고 하더라도 일률적으로 의식 등이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특히, 이 사건에서는 담당 의사가 ‘식물인간 상태가 3개월 내지 6개월 동안 지속되는 경우에도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8% 정도 있으므로 환자도 그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으며, 치료를 계속하는 경우에는 12개월 내지는 29개월 정도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이 사건 치료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시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는 치료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3) 설령 환자에게 생명을 단축시키게 되는 치료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환자 본인의 치료중단에 대한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가 없다. 또한,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를 대신하여 치료 중단 결정을 할 수 없으며, 그러한 가족들의 결정이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합치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결국, 법률이 치료중단의 허용 요건이나 시행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지 아니한 현행 제도 하에서, 자신의 생명을 단축시키게 되는 치료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환자의 권리는 제한된다. 이것이 이번 판결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