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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우 변호사] 간호조무사의 조제행위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0.12.27 14:12 조회수 : 4327

간호조무사의 조제행위

 

법무법인 세승

정선우 변호사

 

의료현장에서는 의사가 입원환자를 진료한 후 의약품 처방내역을 진료기록부에 기재하고, 간호조무사는 진료기록부에 기재된 의사의 구체적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약통에 담겨 있는 의약품을 꺼내 비닐포에 담은 후 환자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전달을 위하여 간호사에게 건네주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와 같은 간호조무사의 행위는 아주 엄격한 조건하에서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무자격자에 의한 의약품 조제행위로서 약사법 위반에 해당한다.

 

무자격자에 의한 의약품 조제행위의 경우 약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무자격자로 하여금 의료행위를 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면허정지 3월과 업무정지 3월 및 부당금액 환수의 행정처분을 받게 되는데, 위와 같은 법 해석 및 적용은 의료현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다분하여 이에 대한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약사법 제2조 제11호는 "조제"란 "일정한 처방에 따라서 두 가지 이상의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한 가지 의약품을 그대로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어서 특정한 용법에 따라 특정인의 특정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약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23조 제1항에 의하면, 약사 및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한편, 같은 조 제4항은 "의사 또는 치과의사는 입원환자 등 일정한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조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의약품의 "조제행위"에 관하여 대법원은, "의사의 의약품 직접 조제가 허용되는 경우에, 비록 의사가 자신의 손으로 의약품을 조제하지 아니하고 간호사 또는 간호조무사로 하여금 의약품을 배합하여 약제를 만들도록 하였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간호사 등을 기계적으로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면 의사 자신이 직접 조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할 것이지만, ‘의사의 지시에 따른 간호사 등의 조제행위’를 ‘의사 자신의 직접 조제행위’로 법률상 평가할 수 있으려면 의사가 실제로 간호사 등의 조제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지휘·감독을 하였거나 적어도 당해 의료기관의 규모와 입원환자의 수, 조제실의 위치, 사용되는 의약품의 종류와 효능 등에 비추어 그러한 지휘·감독이 실질적으로 가능하였던 것으로 인정되고, 또 의사의 환자에 대한 복약지도도 제대로 이루어진 경우라야만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위와 같은 약사법 규정 및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비록 간호조무사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이미 낱알, 캡슐 등으로 되어 있는 의약품을 처방전에 기재된 수량만을 세어서 약봉투에 담는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만을 하였더라도 의사가 실제로 간호사 등의 조제행위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지휘·감독을 하였거나 적어도 당해 의료기관의 규모와 입원환자의 수, 조제실의 위치, 사용되는 의약품의 종류와 효능 등에 비추어 그러한 지휘·감독이 실질적으로 가능하였던 것으로 인정되고, 또 의사의 환자에 대한 복약지도도 제대로 이루어진 경우가 아니라면 약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의료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약사법의 문리적 해석에 충실한 형식적 판결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간호조무사는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나 지도를 받아 의약품 조제행위보다 침습적인 주사행위도 할 수 있으며, 여기서 의사 등의 구체적인 지시나 지도의 내용 및 정도는 해당 의료행위의 위험성, 난이도, 돌발상황 발생시 의사의 적절한 대처가 가능한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간호조무사의 행위는 조제행위의 요소 중 정신적 작업으로서의 독자적인 의사결정이 결여된 채 의약품의 종류, 투약량, 투약방법 등에 관하여 의사가 이미 정해 놓은 바에 따라 행하여진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작업으로서 의사의 조제행위에 대한 보조행위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근 국내 대형병원에서 정제약자동분포기를 이용하여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자동으로 약이 조제되어 포장되는 것과 비교하여도 위와 같은 판례의 해석은 문제가 있다. 간호조무사의 행위보다 정제약자동분포기가 의약품 조제행위로 인한 오류의 가능성 및 위험성이 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의사가 간호조무사의 모든 행위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구체적 지시ㆍ감독을 하였는지 여부가 아니라 기계적으로 조제, 분포장된 약을 어떻게 관리하여 환자들이 정상적으로 약을 복용하게 하는지 여부이다.

 

현재 판례의 해석에 의하면 환자수가 적은 의원급 의료기관을 제외하고는 간호조무사의 조제행위는 약사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위 대법원 판결이 변경되기까지는 의료기관에서 의약품을 조제함에 있어 주의를 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