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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선 변호사] 쌍벌제에 관한 이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1.01.03 16:25 조회수 : 4302

쌍벌제에 관한 이해

 

 

법무법인 세승

이기선 변호사

 

들어가며

 

2010. 11. 28. 드디어 개정된 약사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개정 내용 중 약사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아마도 ‘쌍벌제’일 겁니다. 본디 보건당국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이 약사법을 개정하고자 한 이유는 제약회사의 병원이나 의사에 대한 증재행위를 차단하여 의약품유통체계의 질서를 정비하고, 약제비 요양급여를 줄임으로써 국민건강보험의 재정부실을 막기 위함입니다. 제약회사나 의사들은 법개정이 논의되던 단계에서부터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반면 약업계의 경우는 사정이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약사들은 리베이트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일까요? 아니면 약사들은 법개정에 의해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약사들에게서 쌍벌제로 인해 처벌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발견하기란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 사안에 관한 약사들의 논의는 ‘금융비용(이른바 ’쁘로‘)’의 허용범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법이 시행된 지금 시점에서 한번쯤 기본적인 문제들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법개정의 취지가 무엇인지, 약사들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 경우 처벌되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쌍벌제의 의미

 

법조인에게도 ‘쌍벌제’라는 용어는 생소합니다. 형법에서 ‘양벌규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피용자가 범죄를 저지른 경우 사용자(‘법인’을 포함하여)까지 처벌하도록 하는 특별규정을 말합니다. 반면 ‘쌍벌제’는 아마도 약업 전문기자나 제약업계 관계자들이 만들어 낸 말인 듯하며 행위자 쌍방이 모두 처벌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의사에 대한 증재행위는 형법상 배임증재죄에 해당하고 동시에 약사법위반죄에 해당합니다. 증재행위는 그 속성상 경제적 이익을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의 공모와 공동행위가 필요한데 이러한 특징을 가진 범죄 혹은 범죄자를 ‘필요적 공범’이라 합니다. 관련법에서 특별히 행위자 중 일방만을 처벌하는 경우 처벌규정이 없는 상대방을 처벌할 수 있을까요? 통상 이런 경우 법이 일방만을 처벌하기로 결단한 것으로 취급하고 상대방은 처벌할 수 없습니다. 개정 전 약사법은 제약회사나 도매상의 증재행위를 처벌할 뿐 의사에 대한 처벌규정은 없었고, 결국 돈을 받은 의사는 법해석상 면책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리베이트 관행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제약회사나 도매상 뿐 아니라 의사까지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의료법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의사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불똥이 약업계로 튀었고, 약사법도 개정되어 의사법과 같은 내용의 법 개정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개정된 내용

 

개정 이전의 약사법 제47조는 “약국개설자·의약품의 품목허가를 받은 자·수입자 및 의약품 판매업자,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자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의약품등의 유통 체계 확립과 판매 질서 유지에 필요한 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약사법 시행규칙 제62조 제1항 제5호에서는 제약회사나 도매상이 해서는 아니 될 행위로 “의료인, 의료기관 개설자 또는 약국등의 개설자에게 의약품 판매촉진의 목적으로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 그 밖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위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제약회사나 도매상은 행정처분과 형사처벌을 받았으나,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의사나 약사에 대한 처벌조항이나 행정처분 조항은 없었습니다.

 

개정 약사법 제47조는 다음과 같이 제2항과 제3항을 신설하였습니다.

 

제2항 : 의약품의 품목허가를 받은 자, 수입자 및 의약품 도매상은 의약품 채택ㆍ처방유도 등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약사ㆍ한약사ㆍ의료인ㆍ의료기관 개설자(법인의 대표자나 이사, 그 밖에 이에 종사하는 자를 포함한다) 또는 의료기관 종사자에게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 그 밖의 경제적 이익(이하 "경제적 이익등"이라 한다)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지원, 제품설명회, 대금결제조건에 따른 비용할인, 시판 후 조사 등의 행위(이하 "견본품 제공등의 행위"라 한다)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의 경제적 이익등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3항 : 약사 및 한약사는 의약품의 품목허가를 받은 자, 수입자 또는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의약품 채택 등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제공되는 경제적 이익등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다만, 견본품 제공등의 행위로서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의 경제적 이익등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2항은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회사나 도매상에 대한 처벌 근거를 명확히 법에 규정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약사법 시행규칙에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제3항은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은 약사에 대한 처벌 근거규정으로 ‘쌍벌제’의 핵심규정에 해당합니다.

 

동시에 약사법 제94조의2를 신설하여 위 두 조항을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취득한 경제적 이익을 몰수, 추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약사법 시행규칙에서는 약사가 받은 벌금형에 비례하여 1년 이하의 자격정지 처분을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징역 또는 벌금형과 몰수․추징은 병과할 수 있고, 여기에 다시 자격정지 처분을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이익’의 범위

 

정작 약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약회사나 도매상으로부터 무엇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제껏 제약회사나 도매상은 의약품을 구매하는 약사에게 일정한 비율의 금원을 지급하여 왔습니다. 직접 현금을 주는 경우도 있었고, 상품권 등 대물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약사가 갚아야 할 외상대금을 감하여 주는 방식으로 혜택을 주기도 했습니다.

 

개정 약사법은 ‘경제적 이익’의 범위를 매우 포괄적으로 정하고 보건복지부령(약사법 시행규칙)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예외를 따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은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으나, 시행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행 예고된 개정안은 10만 원 이하의 명절선물, 20만 원 이하의 경조사비 등 소수의 항목만을 합법적인 예외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외의 제약회사가 약사의 학술대회 참가 등을 지원할 수 있고, 자문료를 지급할 수 있으나, 이러한 항목은 약사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의사법의 규정을 그대로 가져다 쓴 탓에 약사법 시행규칙에 약국의 실정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약사들이 제약회사나 도매상으로부터 제공받는 거의 모든 금품이나 편의가 불법한 경제적 이익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령 제약회사가 약사에게 기존에 지급하던 현금 상당액의 일반약을 무상으로 주거나, 그 금액만큼 기존의 채무를 감하여 주는 방식은 모두 위법한 경제적 이익제공입니다. 일부 약사님들은 제약회사나 도매상이 주는 금액할인이 줄어드는 경우 결제를 최대한 늦추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듯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결제 기간을 늘려주는 것 역시 위법한 경제적 이익제공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도 결과적으로 약사에게 의약품을 구매한 대가로 이익을 주는 것임에는 틀림없고, 약사법 시행규칙에서 예외로써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시행규칙을 확정, 추가개정하거나, 보건당국의 실무지침 등이 마련되는 단계에서 약국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 구체적 기준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금융비용과 카드포인트

 

약사회는 약사들이 제약회사나 도매상으로부터 받는 금원은 의사가 받는 금원과는 달리 결제조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유통마진을 붙일 수 없는 전문의약품을 구입한 후 즉시 대금을 결제하는 경우 약국은 그 의약품이 소진되는 기간에 해당하는 결제금액의 이자만큼 손해를 입게 되는데, 제약회사가 약사들에게 지급하는 금원은 위 손해를 보전해 주기 위한 것일 뿐 의약품 구입을 유도할 명목의 부당한 증재라고 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당국도 이러한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고, 거래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그 대금을 지급하는 경우 거래금액의 0.5% 이하, 2개월 이내에 지급하는 경우 거래금액의 1.0% 이하, 1개월 이내에 지급하는 경우 거래금액의 1.5% 이하의 금원을 지급받을 수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의약품 결제 전용카드의 캐쉬백, 포인트 적립도 결재금액의 1% 이내에서는 합법적으로 수수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하였습니다.

 

현재 약업계에서는 인정금액이 너무 적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고, 당국과의 협상에서 약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정금액이 얼마가 되었든 금액의 한도가 정해져 있다는 의미는 한도금액을 초과하여 수수한 경우 위법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행정당국의 단속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잣대가 될 것입니다. 예컨대 공정위나 보건소의 입장에서 보면 단속과정에서 한도를 초과한 금액을 수수한 약사에게 처분하지 않을 명분이 없는 것입니다. ‘거래관행상 상당한 수준의 금액’ 등 탄력적 적용이 가능한 기준으로 변경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도 이러한 취지로 조언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응방안

 

행정당국이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여 추진한 법개정인데다 개정과 시행 단계에서 상당한 진통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시행초기 강력한 위반행위 단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상당 기간 단속된 제약사나 의사, 약사에 대하여 엄정한 처분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비록 약사들을 겨냥한 법개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공정한 법집행이라는 차원에서 약사들에 대한 단속도 이루어질 것이 확실합니다. 당분간 제약회사나 도매상과의 거래에 있어 거래조건을 결정할 때는 개정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반드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