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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재 변호사] 의료기관과 같은 층에 약국을 개설하는 것이 가능할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2.01.04 18:52 조회수 : 5219

의료기관과 같은 층에 약국을 개설하는 것이 가능할까

 

법무법인 세승

류경재 변호사

 

얼마 전 감기에 걸려 병원(의원)을 찾아간 적이 있다. 진료가 끝난 후 원외처방전을 받아서 병원을 나왔는데 같은 층 바로 옆에 약국이 있어서 곧바로 약을 받을 수 있었다. 참 편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약국 또는 이 의료기관은 어떻게 개설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약분업이 시행된 이후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의 담합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와 법률이 시행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의료법 및 약사법에서 두고 있는 개설제한 규정이다. 즉, 의료법(33조 7항) 및 약사법(20조 5항)에서는 의료기관과 약국의 관계를 고려하여 일정한 경우 의료기관 및 약국을 개설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에서는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관계자의 친족 또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약사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약국개설을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약국에 비해 의료기관의 규모가 더 큰 경우가 더 많으므로 의료법 위반의 문제보다는 약사법 위반의 문제가 현실적으로는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어떠한 경우가 약사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약사뿐만 아니라 의료인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약사법 제20조 제5항은 의료기관 관련 약국개설 제한사유로 ① 약국을 개설하려는 장소가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인 경우 ② 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하여 약국을 개설하는 경우 ③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에 전용 복도·계단·승강기 또는 구름다리 등의 통로가 설치되어 있거나 이를 설치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형식적으로 의료기관 시설 안이나 구내가 아니면 약국개설이 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또한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에 통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출입문이 각각 다르다면 개설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수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전체적으로 의료기관 건물인데 그 중 1층은 근린생활시설로서 의료기관이 아닌 소매점, 커피전문점, 약국 등이 입점하고, 특히 약국은 의료기관과 사이에 통로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고 출입문도 별도로 있는 경우 약국개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약국장소는 근린생활시설인 1층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가 아니고, 의료기관과 사이에 통로도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약사법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위 약사법 규정을 형식적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에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위 약사법 규정의 취지는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의 장소적 관련성이 긴밀하면 의료기관과 약국이 담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함에 있다. 따라서 약국이 의료기관 시설 안에 있는지 여부는 등기부등본이나 건물의 용도, 설계도 등 형식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장소가 실질적으로 의료기관 시설 안에 있는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특히 의료기관과 사이에 전용 복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 장소가 의료기관 시설 안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약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개설제한사유에 해당하는 것이다.

 

반대로 약국이 의료기관과 같은 층에 위치하고 있고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개설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즉, 해당 건물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의료기관의 시설이 아니고 또한 의료기관과 약국이 같은 층에서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복도가 전용 복도가 아니라면 약사법상 개설제한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우 환자 입장에서는 의료기관과 같은 층에 있는 약국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에 담합이 없다면 이는 환자의 선택과 편의에 따른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더욱이 의료인과 약사 간 친족 등 특별한 인적 관계가 없다면 같은 층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담합의 가능성을 추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의원과 약국의 경우, 전체 16층 정도의 건물로 4층에 3~4개 의료기관(별개의 의료기관)과 1개의 약국이 있고, 지하 1층 중 일부 장소에 약국이, 1층은 은행, 2층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나머지 층들은 각종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이러한 경우 4층에 있는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들 중 상당수는 4층에 있는 약국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은 단 한 층에만 입주해 있어서 건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를 의료기관의 시설이라고 할 수는 없고, 또한 4층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에 복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두고 한 의료기관과의 전용 복도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 외에 의료기관과 약국 사이에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 수는 없으나,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더라도 의료기관과 약국이 같은 층에 있다는 것만으로 의료기관 또는 약국의 개설이 제한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1심 법원에서도 ‘A약사가 약국개설을 신청한 장소는 비록 의료기관과 전용 복도로 이어져 있지만 7층 전체 점포 면적의 72%를 차지하고 있는 어학원이 사이에 위치해 있고, 이 전용 복도는 어학원의 학생들이 엘리베이터, 화장실, 계단 등을 이용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보여진다’는 이유로 약국개설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시한바 있다.

 

결국 의료기관 또는 약국의 개설이 제한되는지 여부는 단순히 의료법 및 약사법 규정을 형식적으로 해석해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입법취지를 고려하여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료법 및 약사법 규정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있고 유권해석도 있어서 이를 참조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법 해석 및 적용이라는 것은 개별적 사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조금이라도 의료법 및 약사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면 관련 법에 대한 법률전문가의 도움과 관할관청의 유권해석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