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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변호사] 의대생 산부인과 불법참관 판결과 관련 제도에 관하여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2.10.08 15:24 조회수 : 4325

의대생 산부인과 불법참관 판결과 관련 제도에 관하여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김선욱

 

전주지방법원은 산모의 동의 없이 의전원생이 분만을 참관한 것에 대하여, 환자의 자기결정권 침해를 이유로 병원은 환자에게 300만원의 위자료 배상을 명하는 판결을 하였다. 이 판결은 법리적인 면이나 정책적인 면에서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법원은 분만과정에서의 산모는 출산방법, 출산환경, 출산시 의료진을 제외한 보호자나 제3자를 입회하도록 할 것인지 여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자기 결정권을 가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자기결정권은 환자의 동의에 의하여 표현된다고 한다.

 

둘째, 대학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기관이자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 학생들의 임상실습 및 참관이 교육과정의 일부로 정해져 있고 환자의 입장에서도 이를 당연히 예상할 수 있으므로, 대학병원의 경우에는 참관에 대한 산모의 명시적인 동의가 없더라도 묵시적인 동의가 있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산모의 반대의사가 명시적으로 표명되지 않는 한 학생들의 참관이 허용된다. 그러나 대학병원이 아닌 일반병원은 환자의 명시적 동의가 있어야 학생들의 참관이 허용된다. 이 사건 병원은 대학병원이 아니므로 환자의 명시적 동의가 입증되지 아니하였음에 따라 환자의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

 

첫째, 환자의 자기 결정권의 존중은 연세대 세브란스 k할머니 연명치료 여부 사건에서도 중시된 내용이다. 모든 의료에 있어서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하나 특히 사망이나 이 사건과 같은 인격의 존엄성 등과 관련된 의료시술에 있어서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보호되고 존중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이 조성되어야 된다는 면에서 다시금 법원이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환기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두 번째 판결 내용이다. 논란거리는 크게 두 가지로 본다. 우선 과연 대학병원과 일반병원에 있어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는가 여부이다. 법원은 대학병원은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환자도 이미 알고 내원한 것이니 만큼 명시적으로 적극적인 반대 의사 표시가 없었다면 환자 자기결정권 보호장치가 사전에 없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취지이다. 일반병원은 교육기관이 아니므로 병원이 적극적으로 동의를 구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관계를 잘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과연 의과대학생(사안에서는 의전원생이다)이 왜 교육기관도 아닌 일반병원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참관하였는가가 의문이 든다. 대학병원에서도 출산현장을 참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아마도 위 병원은 산과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의과대학생의 교육을 요청받았을 것이고 이에 대하여 의전원과 병원사이에 일정한 협약이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내부적으로는 위 병원도 교육기관의 업무를 위탁받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판례가 이러한 사실관계를 놓쳤는지는 판결문만을 가지고는 알 수 없다. 병원 측이 이러한 주장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면에서 보면 교육기관인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법원 판결의 결론에 무리가 있다고 본다. 환자가 과연 대학병원에 있었다면 같은 상황에서 문제를 삼지 않았을까? 그리고 대학병원이니 환자가 양보하라고 하였다면 환자 측이 수긍을 하였을지도 의문이 든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점은 다음에 있다. 형법은 환자의 비밀을 외부에 누설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고 의료법은 환자의 진료기록 등을 제3자가 이유 없이 열람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겠다는 이유에서 어기면 형사처벌까지 하는 강력한 법규가 있는 것이다. 환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의대생의 교육은 그 필요성에 있어서 서로 충돌하는 영역이 있는 셈이다. 의료법은 의대생이 의사가 되기 이전에 실습(교육이라는 표현이 옳다고 본다)을 하는 과정에서 지도교수의 감독 하에 일정한 의료행위를 하는 것만을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사실상 양해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이 문제이다. 의대생이 지도 교수의 감독 하에 직접 환자에 대하여 하는 행위(의료행위)와 수술참관이나 진료기록열람이 중요한 교육 방식일 것이다. 교육적 의료행위 부분은 제한적으로나마 법에 의하여 해결 되어 있으나, 나머지 참관이나 열람은 법에 의하여 허용되지 않고 있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불법과 탈법 사이에서 우리나라의 미래 의료를 책임질 의대생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인턴제도를 없애려는 제도적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에 인턴이 해왔던 병원 내에서의 여러 행위가 의과대학생에 의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앞서 본 제도의 공백을 개선하지 않고 시행된다면 다수의 학생과 병원 그리고 환자가 법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본다.

 

방법은 두 가지이다. 비록 법원이 대학병원이 교육기관이기도 하기 때문에 묵시적으로 모든 것이 동의되었다고 판단한 것처럼 되었지만, 이러한 판결이유가 앞으로도 계속하여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대학병원도 여러 방법을 통하여 교육기관임을 환자에게 알리고 사전 양해나 동의를 구하여야 법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된다. 다른 근원적인 방안은 의료법규에 관련 규정 특히 진료참관이나 환자 진료기록 열람에 대하여 의대생의 교육목적적 차원의 접근을 허용하는 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 때문에 국민이 어느 정도 양보를 해야 할 영역이다. 교육이 잘된 의과대학생이 배출되어야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의 전망도 더 좋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법취지를 반대할 명분은 없다고 본다. 지금과 같이 의과대학생들이 눈치를 보거나 병원이 눈치를 보면서 암암리에 음지에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은 환자나 의과대학생 그리고 병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부의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