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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승 변호사] 분업화된 의료현실에서의 의료과실 및 책임 판단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03.21 16:21 조회수 : 4302

 

분업화된 의료현실에서의 의료과실 및 책임 판단

 

법무법인 세승

정혜승 변호사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경우 주 진료과목을 정하여 입원하였더라도 수시로 관련 과목 의사들에 의한 협진이 이루어지고 이 협진 결과에 근거하여 치료가 시행된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사망한 경우, 분업화된 의사들 사이의 과실 및 책임에 대하여 판단한 2012년 판결이 있어 소개한다.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가 대학병원 입원하였다. 환자는 턱 등에 부상을 입어 하악 골절에 대한 양악 고정술 등 임시 치료를 받은 상태로서 다른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성형외과 수술이 필요하였다. 이 환자의 치료를 담당한 이비인후과 1년차 전공의와 흉부외과 3년차 전공의는 환자에 대한 각종 검사 결과 후두개곡 혈종과 인두 후방의 부종과 발적을 확인하였다. 이비인후과 전공의와 흉부외과 전공의는 성형외과 측에 ‘이비인후과와 흉부외과적으로 특이 소견이 없고, 수술 금기 사항이 없으므로 성형외과 수술이 우선’ 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염증 발생 가능성이나 그와 관련하여 관찰해야 하는 사항 등에 대해서는 따로 주의를 주지 않았다.

 

  위 의견에 따라 환자는 성형외과 병동에 입원하였고, 진통제와 항생제를 투여 받으면서도 흉부와 경부 통증, 호흡곤란을 호소했고 각종 활력징후가 불안정하였다. 성형외과 전공의들은 환자의 상태에 대하여 관련 과들에 협진 의뢰를 하였고 위 흉부외과 전문의는 새로이 흉부 CT를 촬영하고도 ‘특별한 감염 소견이 보이지 않으므로 다른 과에 문의하라’ 라는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지속되는 흉통에 대한 추가 문의에도 ‘통증 조절 이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하였다. 그리고 위 이비인후과 전공의 역시 환자를 추가 진료하고도 기관절개 필요성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인후부 손상이나 염증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환자는 하방 인두파열에 의한 경부와 흉부의 화농성 염증 및 패혈증으로 사망하였고, 위 이비인후과, 흉부외과, 성형외과 전공의들은 업무상과실치사혐의로 기소되었다.

 

  의사들 사이에 환자를 치료하며 수평적 분업이 이루어진 경우 각각의 의사가 자신이 분담한 분야에서 주의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다른 의사도 그의 분야에서 주의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것과 그들의 진료 결과를 신뢰하면 충분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의사의 주의의무 위반까지 예상하여 의료행위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원칙이다(신뢰의 원칙). 그러나 복합적인 증상의 환자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의 특정 과에 입원하여 그 과에서 환자의 향후 진료, 예후, 환자의 상태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부담하게 된 경우 그 과의 의사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주의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진료과목과 무관한 환자의 전반적 상태를 면밀히 관찰, 필요하다면 신속하게 관련 과에 협진을 요청하는 등, 분업적 의료행위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사소통, 협진, 분담영역 사이의 업무조정 등의 기능을 주도하여야 한다.

 

  법원은 위와 같은 입장에 근거하여 성형외과 전공의들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신속하게 관련 과에 협진을 요청하고, 관련 과의 회신을 신뢰하여 환자를 진료하였으므로 과실이 없다고 판단, 무죄를 선고하였다. 반면 이비인후과와 흉부외과 전공의의 경우 분업화된 의료행위에서의 의사소통과 협력의무를 다하지 못하였고, 환자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을 통하여 치료에 참여한 다른 의사들에게 충분히 정보를 제공하고 협력하여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하여 환자가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 각 금고형 및 이에 대한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위 판결에서는 의료기술 발전에 따라 의학은 점점 더 전문화, 분업화, 세분화할 것이고 그 결과 종전보다 효율적이고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료를 분담한 의료인들 사이에 긴밀하고 효율적인 의사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오히려 분업화되지 않은 의료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위험을 환자에게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존의 의사 간 신뢰의 원칙에서 한 걸음 나아가 분업화된 종합병원에서 각 과목의 의사들에 대한 주의의무를 세분화하여 판단한데 의의가 있다. 종합병원의 경우 각 과목에서 성실히 환자를 진료하는 것도 중요하나,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과목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및 협력 또한 중시하여야할 것이다.

 

(출처 : 의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