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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승 변호사] 어떻게 해야 처벌되지 않을지 미리 알려주세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2.05 15:15 조회수 : 3930

 

어떻게 해야 처벌되지 않을지 미리 알려주세요

 

법무법인 세승

정혜승 변호사

 

전제군주시대에는 왕이 곧 법률의 제정자이기 때문에 왕이 범죄로 규정한 행위에 대하여 왕이 직접 형벌을 내리는 것이 당연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 시민계급의 성장과 함께 누구나 미리 법률로 범죄라고 규정되지 않은 행위로 인하여 처벌되어서는 안된다는 원칙(죄형법정주의)이 자리 잡게 되었고, 현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한 법원칙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라 하여도 미리 법률이 범죄로 규정하지 아니하면 처벌할 수 없는 것이지만, 복잡다기한 현대 사회에서는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로 모든 생활형태를 규율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일정한 경우 법률에서는 ‘처벌’에 관한 내용의 대강을 규정하고, 하위법령인 시행령, 시행규칙을 통하여 처벌되는 ‘행위’를 정하기도 한다.

 

(현지조사 시 서류미제출 등으로 처벌되는 예)

보건의료분야야말로 다양한 생활형태를 반영하고 있어 국회가 제정한 법률 이외에도 수많은 하위 법령이 존재하고 있고, 일부는 형벌에 관한 구체적 규정 역시 하위 법령으로 위임하고 있다. 그러나 하위법령으로도 도무지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 중 하나가 국민건강보험법상 현지조사에 관한 벌칙규정이다. 동법 제97조 제2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요양, 약제의 지급 등 보험급여에 관한 보고 또는 서류 제출을 명하거나, 소속 공무원이 질문하게 하거나 관계 서류를 검사하게 할 수 있다.” 라고 규정하여 일단은 보건복지부장관이 광범위한 서류제출을 명할 수 있고, 소속 공무원 역시 광범위한 질문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동법 제116조에서는 “제97조 제2항을 위반하여 보고 또는 서류 제출을 하지 아니한 자, 거짓으로 보고하거나 거짓 서류를 제출한 자, 검사나 질문을 거부, 방해 또는 기피한 자”에게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장관이나 소속 공무원이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모두 응하여야 처벌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일까? 과연 보험급여에 관련되는 서류 또는 보고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보고나 서류제출을 거부하고, 질문에 대한 응답을 거부하거나 심지어 방해하는 경우에도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법은 시행령에서도 시행규칙에서도 어떠한 내용의 보고 또는 서류에 대하여 의무를 위반하였을 때 처벌되는지 규정한바가 없다(다만 현지조사 시 제출하여야 하는 서류 등을 보건복지부 내부 지침으로는 정하였다). 물론, 현지조사 과정에서 별다른 충돌이 없는 경우에야 위 조항으로 고발당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지만, 앞으로 의료기관의 현실이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 법률조항만으로는 처벌되지 않는 방법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병원 식당 직영가산금 수령이 사기죄로 처벌되는 예)

한동안 식당을 직영하지 않으면서도 직영인 것처럼 가장하여 직영가산금을 청구하였다 하여 형법상 사기죄로 수사 및 처벌이 이루어진 사례가 있었다. 이 사례에서도 위와 같은 문제점이 동일하게 발생한다. 일단, 식당을 직영하면 가산금을 준다는 보건복지부의 고시는 존재하지만, “직영”이 어떤 의미인지는 그 어디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물론 식당을 운영하는 주체가 스스로 명백히 직영으로 운영하지 않으면서 직영임을 가장하여 가산금을 받는 경우라면 이 가산금 청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사기죄에 해당한다 하여 처벌받더라도 덜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직영”의 의미가 어디까지인지는 식당운영자도 법률을 통해 명확히 알 수가 없다. 직원을 모두 직접 고용하였지만 식당 운영에 관하여 자문을 제공받는 경우, 그 자문의 범위가 직원들의 근무관리 및 연봉협상에 대한 의견제시까지 포함하는 경우, 직원의 일부는 파견된 자들이지만, 식당의 메뉴관리, 식자재 공급관리는 직접 하는 경우, 이러한 다양한 경우들이 각 직영인지 아니면 위탁관계인지 선을 긋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애매한 행위태양에 기초하여 사기죄라는 범죄에 해당한다 하여 형벌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다.

 

모든 문제점을 예상하여 완벽한 범죄 목록을 만들어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각 분야에 맞는 방법으로 행위자들이 대체 어떻게 하면 처벌되지 않을 수 있는지는 미리 알려 주어야 근대 형법의 근본 원칙인 죄형법정주의가 진정하게 실현될 것이다.

 

(출처 : 의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