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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변호사] 학술연구 목적의 진료정보 사용에 있어서 법적 문제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10.20 14:23 조회수 : 4171

 

학술연구 목적의 진료정보 사용에 있어서 법적 문제

 

법무법인 세승

박재홍 변호사

 

얼마 전에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동일한 질병으로 같은 대학 소속 각 병원들에 내원한 환자의 진료정보를 연구해보고 싶은데, 이러한 학술연구가 법령에 위반될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질의를 받은 적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는 동일한 학교법인에서 운영하고 있는 A병원과 B병원이 있는데, A병원 의사 甲이 A병원 환자 乙 또는 B병원 환자 丙의 진료정보를 학술연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통계작성 및 학술연구 등의 목적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서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개인정보를 처리함에 있어서 예외적으로 목적외 이용 또는 제3자 제공을 허용하고 있다(개인정보보호법 제18조 제2항 제4호).

 

이 때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형태’, 즉 익명화는 개인식별정보를 영구적으로 삭제하거나 개인식별정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 의료기관의 고유식별기호로 대체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9호 참조).

 

그런데 현행 법령상 ① 진료정보 중 무엇이 개인식별정보에 해당하는지 여부, ② 그 자체로 개인을 식별할 수 없지만, 다른 정보와 쉽게 결합하여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진료정보(잠재적 개인식별정보)도 삭제되어야 하는지 여부 등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 때, 甲이 乙과 丙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 기본적인 개인식별정보를 삭제한 진료정보를 사용할지라도, 진료정보의 특성상 다른 정보와 합리적으로 결합할 경우 당연히 특정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이상, 이러한 잠재적 개인식별정보까지도 익명화 조치에 의한 삭제대상이라 볼 경우, 사실상 甲이 乙과 丙의 구체적인 진료정보를 학술연구 목적으로 거의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진료정보 목적외 사용 또는 제3자 제공’에 관련하여, 「진료정보는 수집한 의료기관에서 진료 목적으로만 이용하여야 하며, 그 범위를 초과하여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금지됨. 진료기록은 의료법 제21조의 경우 외에는 제공할 수 없음. 진료정보 외의 개인정보를 목적 외 이용 또는 제3자 제공할 경우에는 정보주체에게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함.」이라 해석하고 있다{보건복지부․안전행정부. 2013.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 의료기관편(2013. 12.)”. 13면}.

 

다시 말해, 甲은 위 보건복지부 해석에 의하면, 乙의 진료정보를 학술연구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B병원으로부터 丙의 진료정보를 학술연구 목적으로 제공받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위 유권해석에 의하더라도, 의료법 제21조 제2항에 의거하여 환자 본인이 각 병원으로부터 진료기록을 제공받은 후, 이를 다시 甲이 환자로부터 제공받거나, 甲이 환자의 대리인으로서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각 병원에 진료정보를 제공받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참고로, 의료법 제21조 제3항은 학술연구 목적이 아니라, 진료 목적으로 다른 의사 또는 병원이 내원한 환자의 이전 진료경과 확인을 요청하는 경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환자 중 자발적으로 甲에게 자신의 진료정보를 학술연구 목적으로 제공할 의사가 있는 비율이 얼마나 될 것이며, 설사 진료정보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의료법령에 따라 신분증 사본 제출, 자필작성한 동의서․위임장 제출 등 매우 번거롭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되기 때문에, 실제 甲에게 진료정보가 제공될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환자의 진료정보를 연구해 보고자 하는 의사는 얼마나 될까?

 

임상의학분야 학술연구에 있어서 환자의 진료정보 사용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의사가 학술연구 목적으로 익명화하여 사용할 수 있는 진료정보의 범위는 명확하지 않은 반면, 진료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한 목적외 사용 또는 제3자 제공을 일체 허용하지 아니하고, 오직 의료법령에 의거하여 의사가 직접 학술연구 목적으로 진료정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며, 대신 환자가 각 병원으로부터 진료정보를 받아서 다시 의사에게 학술연구 목적으로 제공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은 임상의학 연구현장의 실정에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보의 대량 생성과 유통으로 인하여 진료정보 유출의 위험성도 커진 만큼 진료정보 보호를 위한 제도는 필요하다. 그러나 진료정보 보호는 그 자체로 의료의 최종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진료정보 보호보다 진료정보를 활용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것이 좀 더 가치가 있다면, 의사가 진료정보를 활용하여 연구할 수 있도록 함은 공익에도 부합한다. 또한 의사의 경우, 진료정보에 대한 보호는 기존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서도 상당부분 달성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의사와 의료기관이 학술연구 목적으로 진료정보를 사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임상의학분야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보완대책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진료정보를 활용한 학술연구는 결국 향후에 더욱 더 많은 환자를 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측면에서, 이는 비단 의사만의 요구는 아니라 할 것이다. 끝.

 

(출처 : M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