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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홍 변호사] 의료사고, 민사책임을 인정하면 형사책임도 인정될까.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12.08 17:11 조회수 : 4283

 

의료사고, 민사책임을 인정하면 형사책임도 인정될까.

 

법무법인 세승

박재홍 변호사

 

병원 내에서 환자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경우, 환자는 병원에 대하여 두가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첫째는 민사상으로 의사의 과실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고, 둘째는 형사상으로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의사를 고소하는 것이다.

 

이 때 의사의 과실 유무와 관련하여, 민사법원에서 민사상 과실이 부정될 경우, 형사법원에서도 형사상 과실을 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민사상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반드시 형사상 과실도 인정되어야 하는 것일까? 본고에서는 이와 관련된 대법원 판례 한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의사는 환자의 개구장애를 치료하기 위한 악관절성형술을 시행하였다. 그런데 당시 의사가 수술기구인 프리어(freer)를 사용하여 환자의 유착된 조직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프리어 앞부분이 3㎝ 정도 파손되어 환자의 체내로 떨어졌다. 의사는 유착 부위의 출혈을 지혈한 후, 이동식 방사선 촬영 등을 통하여 프리어 파편을 탐색하였으나, 프리어 파편을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의사는 일단 수술 부위를 봉합한 후 뇌CT검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검사결과상 우측 뇌출혈과 뇌부종의 소견이 관찰되고 프리어 파편이 우측 전두엽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의사는 환자에 대한 우측 두개골 절제술, 혈종제거술, 광범위 뇌조직 절제술 등을 시행함으로써 환자의 증상을 치료하고 프리어 파편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수술 후 환자에게 뇌손상으로 인한 개구장애, 안면신경 마비, 사지마비 등 후유장애가 남았다.

 

이 사건에서 민사법원은 의사가 프리어에 과도한 힘을 주어 프리어가 부리지지 않도록 하고, 프리어가 부러지더라도 이를 즉시 제거하여 부러진 프리어 파편에 의하여 주변조직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다 하지 아니하여 프리어 파편이 환자의 뇌심부까지 밀려들어가 환자에게 뇌손상을 유발한 과실을 추정하여, 병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같은 사안에 대하여 환자 측이 해당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상죄로 고소한 형사사건에서 대법원은 의사로서는 통상 10~15㎏ 이상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프리어가 환자의 얇고 연한 막을 박리하는 수술 과정에서 부러질 수 있다는 결과를 예견할 수 없었다고 보이므로, 의사가 프리어를 사용하면서 약간 힘을 주었더라도 그것을 과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의사의 형사책임을 부인하였다.

 

이처럼 민사상 과실과 형사상 과실은 구분되고, 설사 민사상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형사상 과실이 반드시 인정되지 않는다. 특히 형사상 과실을 인정함에 있어서 대법원은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바, 실제 위 사건 이외에도 의사가 수술 도중에 부러진 메스조각을 두고 그대로 봉합한 사건 등 다수의 의료사건 사례에서 의사의 형사책임을 제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업무상과실치사상과 관련한 형사사건에서, 관련 민사사건의 결과는 형사사건의 판단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의료사건은 대체로 그 내용이 전문적이고 특수한 사건이 많아, 형사법원으로서도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데, 이미 민사법원에서 의료과실이 있다는 판단이 내려진 경우, 형사법원의 법관이 형사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판단을 내리거나, 혹은 판결에 있어서 다른 판단을 내리게 된 합리적인 이유를 설시하기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사고에 있어서 민사와 형사는 독립된 관계인만큼, 형사상 과실이 부정되더라도 민사상 과실이 반드시 부정될 것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법원에서 형사상 과실이 인정될 경우, 민사법원에서도 의사의 민사상 과실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란 어렵다.

 

이처럼 의료분쟁에 있어서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의 문제가 동시에 제기될 경우, 언제나 어느 한쪽의 결과가 다른 쪽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의료분쟁의 당사자로서는 민사사건과 형사사건을 아우르는 큰 시각을 지니고, 양자 모두에 있어서 신중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 : MD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