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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변호사] 무분별한 법안 발의와 병원경영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4.10 14:42 조회수 : 4383

무분별한 법안 발의와 병원경영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김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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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다. 기본권은 무제한의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 구성원간의 합의가 있으면 제한이 가능하다. 이를 기본권 제한의 법률 유보원칙이라고 한다.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권리는 법률로써 양보될 수 있다.

헌법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아 대신 이러한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도록 하였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권을 행사하는 국회의원의 권한은 최대한 신중하여야 옳다. 그런데 요사이 입법권 행사가 마치 전제 군주의 권력행사처럼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병원에 종사하는 의료인이나 직원들도 우리 국민이다.

기본권의 보호에 있어서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 또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담당하는 일차적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무원에 준하는 취급을 할 수는 없다. 헌법상 평등의 원칙은 의료계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의료업은 유독 법규에 의한 기본권 제한이나 간섭을 많이 받는 분야이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직종 중 명찰을 강제적으로 달아야 하는 유일한 국민이다. 의료법, 국민건강보험법 등 각 종 기본권 제한 법률과 그에 따른 대통령령 및 시행규칙들이 무더기이다.

더 나아가서 보건복지부장관 고시나 가이드라인처럼 일반 사업자라면 몰라도 되는 행정청의 내부 처리지침까지 알아야 된다. 공무원 수준의 법규 지식이 강요된다. 법규의 내용은 대부분 이런 저런 행위는 금지되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을 받는다는 엄한 내용이다. 물론 국민의 신체와 건강을 책임지는 직종이기 때문에 보다 엄한 규율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런데 우리 병원관련 법규는 필요이상으로 엄하다. 법리적으로도 여러 문제점이 있다. 더 큰 문제는 균형성을 잃은 법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몇 가지 대표적인 문제점을 살펴보겠다.

우선 큰 틀에서 보자. 우리 입법자들의 의료에 관한 기본적 인식에 문제가 있다. 의료계를 불신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의료는 전문가로서 의사의 재량권을 존중하고 신뢰해야 하는 대표적 사회영역이다. 그런데도 입법은 가장 후진적이다. 무조건 금지하는 입법방식을 택하고 있다. 재량 존중과는 정 반대이다. 이를 사전적 금지방식이라 한다.

이런 형태는 법은 있으되 그 규범력을 약화시키는 단점이 있다. 수많은 법규를 다 알 수 없고 결과적으로 걸리게 되면 재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법에 대한 위법성 인식이 매우 낮다는 말이다. 재수 없게 걸린 사람이니 처벌이 대체적으로 경하다.

반면에 대다수의 선진국의 의료영역에 관한 규제방식은 사후적 엄벌방식이다. 우선은 전문가의 자율에 맡기고 법규는 최소화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엄정하게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민사책임을 지게하거나 형사처벌을 가혹하게 한다. 신뢰 받는 의사나 병원이 환자를 잘 볼 것이라는 믿음이 관련 입법에 있어도 필요하다.

다음으로 특정 사안으로 촉발된 선정적인 입법의 문제점이다. 언론으로 공분을 산 사건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국회의원은 이때다 하고 법을 만든다. 이미 있는 법을 이용하여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함에도 법을 만든다. 공분을 산 사건이니 만큼 논리보다는 감정에 앞서 법을 만들게 된다. 감정이 앞선 법은 전체 법체계 및 법리에 해를 줄 수 있다.

리베이트와 관련된 법규가 그 예이다. 예전부터 리베이트는 존재하였고 처벌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러 이유로 리베이트 쌍벌죄가 의료법에 규정되었다. 문제는 규제 형식이다.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의 방식을 취한 것이다. 제품 설명회 등 몇 가지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이른바 포지티브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외적인 몇 개의 행위 이외에는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의 모든 영업행위가 금지된 것처럼 돼 버린 것이다. 이에 따라 매년 애꿎은 병원이나 의사들은 관행상 행하여온 제약회사의 마케팅이나 학술 연구에 관여된 것 때문에 줄줄이 형사처벌을 받아 오고 있다.

원래 법적으로 가능하였던 행위를 금지하려면 문제가 되는 특정행위 만이 금지된다는 네가티브방식으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법 이전에 여러 사회적 관행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야 예측가능성이 부여되고 거래 관행이 존중되며 뜻밖의 형사처벌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의료광고를 몇 개만 허용하고 모두 금지한 포지티브 규정방식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위헌으로 결정하였다. 현재에는 몇 개의 금지 광고이외에는 의료광고가 가능하도록 한 네가티브 방식으로 법규가 변경된 것이 참고가 된다. 최근 광역응급의료센타 관련 환아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전원금지 응급의료에관한법률 개정안도 법리상 문제가 있다. 이 부분은 지난 칼럼을 참조하기 바란다. 

또한 특정 이해관계인을 위해 선의를 가장한 법이 늘어나고 있는 문제점도 무시 할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 신해철법이라고 불리는 의료사고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들 수 있다. 실제 고 신해철씨는 의료분쟁조정법과는 무관하였다. 헌법상 법원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 될 우려가 있는 법이었다.

고 신해철씨의 추도 분위기에 편승해 법에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 세력의 이익이나 주장이 관철되는 법이 개정되었다. 법 시행 후 분쟁조정건수가 더 늘었다고 한다. 향후 병원은 중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적극적 대처에 몸을 사리고 방어적 진료를 하게 될 것이다.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안경사의 직역을 키워 안과의사의 업무범위의 일부를 넘기자는 법안,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사법경찰관의 기능을 추가시키자는 등의 입법안, 의료법에 재활병원을 병원의 종별로 신설하고 한의사도 재활병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 등이 또 다른 예이다.

마지막으로 처벌 강화법규의 명분 없는 발의이다.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은 명분과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사회 구성원에 대한 망신주기법이나 비난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리베이트 처벌강화법이 그 예이다.

병원장 등을 긴급체포가 가능하도록 형사처벌 상한을 징역 2년에서 3년으로 강화하였다. 성범죄 의료인에게 10년간 취업이나 개업제한을 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관련 규정이 위헌이 되었다. 그랬더니 이제는 최장 30년간 취업하지 못하게 불이익을 강화한 법안이 나왔다. 일회용의료기기 사용에 대하여 처벌규정을 만든 지 얼마 안 되었다. 처벌이 약하여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1년도 못되어 또 처벌을 강화한다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모두 왜 처벌을 강화하여야 하는지에 관하여 상상에 따른 주장은 있지만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한 법들이다.

의료입법은 의료의 재량을 보호하고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선진적 시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의료는 많은 고용을 창출하는 노동집약적 영역이기도 하다.

졸속으로 만든 법규는 병원이 본연의 의료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규제를 대응하기 위해 불필요한 행정업무만을 가중시킬 위험이 있다. 또한 저수가로 인하여 재정적 어려움이 있음에도 형식적인 법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병원에 정상적 감내가 어려운 경제적 부담을 지울 수 있다.

과도한 법규로 병원이 경영난에 빠지거나 폐업을 함에 따라 많은 수의 환자가 불편해 질 수 있고 다수의 종업원이 생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을 입법자들은 인식하여야 한다. 정부는 규제 일몰제 등으로 되도록이면 규제를 풀어 나가려고 하는데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치적 쌓기 법규 남발 현상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의료에 있어 불필요한 규제나 행정력 낭비요인이 있는지를 살피고 이를 없애는 입법도 중요하다.
 


(출처: 병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