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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승 변호사]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임의비급여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9.20 13:43 조회수 : 4512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임의비급여

 

법무법인 세승

정혜승 변호사

 

정부가 소위 문재인 케어를 통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할 것이라는 소식에 의료계의 우려가 높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인다는 목적이 문제가 아니고 의료계의 일방적 희생으로 보장성이 확대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보장성 강화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한편, 일방적 희생을 막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료수가의 현실화일 것이나 어느 정도의 수가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수가의 현실화만큼 중요한 것이 의사의 진료가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자의 업무 행태에 따르면 특정 환자에게 요양급여기준과 상이한 진료행위가 필요하더라도 이를 시행하고 환자로부터 그 대가를 지급받는 것이 쉽지 않다. 아무리 의학적 견해와 환자의 필요에 따라 진료를 하더라도 요양급여기준과 다르면 이 행위에 대해 보험청구를 할 수 없음은 물론, 환자로부터 비용을 지급받더라도 진료비 확인을 거쳐 환불해야 할 위험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인의 진료행위와 건강보험법상 보험급여범위인 요양급여가 동일하다고 해석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모든 질병, 모든 치료방법에 비용을 지급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료행위와 요양급여의 범위는 다르다.

 

과거 논란이 계속되어 대법원은 2012년 여의도성모병원 사건에서 의학적으로 타당하고 환자에게 필요하며 사전절차를 거칠 여유가 없고 환자에게 비용안내를 포함한 설명을 하고 동의를 받았다면 요양급여기준 외의 진료행위, 즉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를 하고 환자로부터 비용을 받을 수 있다고 판시하였지만 이는 환자와 의사 간 건강보험 보장범위 외 진료를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위법하다는 시각에서 이루어진 판단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를 설계할 때부터 입법자는 건강보험 기준 외 진료가 위법이라고 생각했을까? 1999년 현행 건강보험제도가 완성되며 요양기관 강제지정제도가 위헌이라는 논란이 불거졌을 때 헌법재판소는 비록 강제지정제를 실시하더라도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를 때 의료행위를 비급여대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강제지정제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환자들 역시 보험으로 보장되는 급여부분 외에도 의료소비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자신의 부담으로 선택할 비급여대상이 있다는 것도 합헌 판단의 이유 중의 하나였다. , 건강보험으로 보장이 되는 것은 건강보험 재정으로, 그 기준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 범위는 환자의 부담으로 치료가 가능한 상황을 당연히 예상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마찬가지로 국민건강보험법령에 따를 때 보험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 범위의 진료에 대해 환자와 의사 간 사적인 계약을 금지하는 명시적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공보험제도란 본래 환자와 의사 간 사적 계약을 통해 환자가 부담하던 진료비를 보험제도에서 어느 정도 보장해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현행 법령 해석 및 운용 상황에 따르면 위 취지에서 벗어나 보험 보장 범위 내의 진료가 아니면 환자에게 제공하여서는 안된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이 모든 환자의 모든 필요한 진료에 대해 비용을 지급할 수 있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환자에 대한 진료는 제각각 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처 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환자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새 법령의 근거도 없이 제공받을 수 있는 진료의 범위를 사실상 요양급여기준 범위로 제한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법령 해석에 있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래 진료는 의사와 환자 간 계약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이 계약에 따른 비용의 일부를 보장해주는 제도이며, 보험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 부분은 환자가 선택하여 자신의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처럼 요양급여와 진료행위를 혼동하는 상황이라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표면적으로만 높인다 한들, 실제 환자들이 제공받는 진료의 범위는 오히려 좁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