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처분의 지연과 그 위법성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 정재훈
행정청이 국민에 대하여 행정처분을 하고자 하는 때에는 행정절차법에 따라서 처분 이전에 일반적으로 사전통지, 의견청취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차를 거친 후 행정청은 신속히 처분하여 해당 처분이 지연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이 행정절차법에 규정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1심과 2심에서 결론이 엇갈린 사건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다섯 명의 의사들은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과 관련하여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의 사전통지를 받고, 이에 대하여 행정청에 의견제출을 하였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의 의견제출 후 의사들에 대하여 약 3년 6개월의 기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소 자격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하였고, 이에 대해서 의사들이 행정절차법 위반 등을 주장하며 취소소송을 제기한 사례이다.
1심은 원고들인 의사들이 승소하였다. 행정청이 신속하게 처분을 하여야 한다는 의무는, 상대방의 정당한 법적 이익을 보호함과 아울러 처분을 둘러싼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하고, 분쟁의 조기 해결, 행정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 등을 보장하려는데 그 취지가 있다고 1심 법원은 설시하였다. 그리고 행정청은 의견제출 등을 거친 후 법률상·사실상의 장애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곧바로 처분을 하여야 하고, 이에 위반하여 처분이 지연되어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게 되면 위법한 처분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3년 6개월의 기간 경과로 인하여 의사들에게는 정당한 기대 또는 신뢰가 형성된 반면에, 행정청의 처분 지연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정도의 법률상·사실상 장애가 없다고 보아 지연된 처분이 위법하다고 하여 원고 승소 판결을 하였다.
그러나 2심에서는 그 결과가 뒤바뀌어 원고가 패소하였고, 이러한 2심 판결은 3심에서도 바뀌지 않아 결국 원고가 패소하게 되었다.
1심 법원과 달리 2심 법원은 행정청의 신속 처분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행정절차법에 처분시기를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 점, 제약회사 대표 등에 대한 형사판결 결과에 따라 의사들에 대한 처분이 변동될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던 점,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전 사건이라서 행정청 내부적 검토 및 정책 수립이 필요한 점, 행정청은 관련자들의 형사판결 결과를 곧바로 확인하기 어려운 점,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전이라서 의사들에 대한 형사처분이나 사법기관의 조사가 이루어진 바가 없었던 점, 행정청에서 보도자료 및 언론기사 등을 통하여 리베이트 쌍벌제 이전 리베이트 수수 의료인에 대하여도 행정처분을 할 것임을 공표한 점 등을 살펴볼 때 의사들에 대한 자격정지 처분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하였다고 볼 수 없고, 그러한 신뢰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하여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그 이유로 설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2심 판결은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친 면이 있다. 2심 판결에서 설시한 이유를 종합해 보면, 결국 이 사건 원고들인 의사들에 대하여 자격정지 2개월의 처분을 하기에는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아서 처분이 지연되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행정절차법은 막연히 처분이 지연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청문·공청회 또는 의견제출을 거쳤을 때에 행정청은 신속히 처분하여 해당 처분이 지연되지 아니하도록 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청문·공청회 또는 의견제출이라는 절차는 처분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위한 절차인바, 처분을 하는 행정청은 이러한 절차 이전까지 처분을 위한 조사를 충분히 하고,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친 후, 이러한 의견이 처분 여부에 영향이 없다면 신속히 처분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 행정절차법 규정의 취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당사자의 의견제출 등의 절차를 거친 후에도 처분여부가 불확실하여 행정청이 새로운 조사를 하는 등으로 인하여 당사자의 법적·사실적 불안정 상태가 지속되지 않게끔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에 관하여는 2016년 의료법의 개정으로 시효제도가 도입되어 신속한 처분 의무에 관한 논의의 의미가 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효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업무정지 처분, 과징금 부과처분 등의 기타 처분에 관하여는 여전히 그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